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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씹어 삼키기

김씨표류기 (Castaway On The Moon)





김씨표류기
감독 이해준 (2009 / 한국)
출연 정재영,정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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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부금 7년 만에 내 집을 장만했습니다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

 




 



1999년 8월 10일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한강의 밤섬(栗島). 출입이 전면 통제되어 있는 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마치 도심 한 가운데 고립되어 살아가는 현대인 같지 않은가. 물론 영화의 대부분은 밤섬이 아닌 충주와 청원에서 찍어 CG를 입힌 것이라 한다. 처음에 남자 김씨는 섬을 탈출하기 위해 바닥에 'HELP'를 써 놓지만 결국에는 'HELLO'로 바뀐다. 그가 외로운 섬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출발한 영화는 무엇보다도 영상미가 돋보였다. 작은 소품, 고립된 여자 김씨의 방, 아기자기하게 느껴지는 쓰레기로 만든 남자 김씨의 오리집 등이 그러했다. 








관객의 위액을 자극하는 짜파게티의 유혹



외로운 섬의 유일한 대화 상대, 오뚜기 깡통




톡톡 튀는 대사들도 재미있었다.

 

남자 김씨가 오리배를 끌고 가며, "주택부금 7년 만에 내 집을 장만했습니다."

 

오리배 위의 새 똥을 카드로 긁어 내며, "내가 진짜 오랜만에 카드를 긁어보는구나!"

 

"어류보다 조류가 맛있습니다. 진화라는 건,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짠 맛에 굶주려 있다가 자신의 땀을 핥으며, "나는 존나 맛있다." 

 

짜장면집 '진짜루'의 배달원이 밤섬에 오리배를 타고 배달 가며, "어휴 내가 진짜루!"

 

여자 김씨가 짜장면을 먹으며, "처음 맡아보는 희망의 냄새입니다. 진짜루."

 


영화관에는 나와 친구 외 6명 정도가 있었는데, 다들 느슨하게 늘어져 편안하게 감상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톡톡 튀는 대사들은 크게 박장대소 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가에 작게 미소가 지어지는 기분 좋은 요소였다.

 


집안에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인 여자 김씨는 가족들과도 단절된 생활을 한다. 미니홈피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대리만족을 느끼고 방 안에서 뜀박질을 하며 자신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옷장 안에 뽁뽁이를 채워넣고 그 위에 누워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사는 인물이다.

 

그녀의 취미는 카메라로 달을 찍는 것, 달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 년에 두 번, 민방위 훈련이 있는 날에는 달이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을 찍는다. 모든 것이 멈추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세상인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씨를 보게 된다. 남자 김씨와 와인병에 담긴 쪽지로 소통하게 되면서, 여자 김씨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Window가 아닌 실제 Window를 통해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기 시작한다.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가 카메라 렌즈가 아닌 실제로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민방위 훈련 덕분이다. 방 안에서 열심히 뜀박질 하던 것이 빛을 발하여 남자 김씨가 탄 버스를 쫓아가지만, 버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 때 들려오는 민방위 훈련의 사이렌 소리는 마치 외로운 현대인을 위한 희망의 노래 처럼 경쾌했다.

 


이 영화에서 희망의 메세지는 남자 김씨가 짜장면을 만들어 비빌 때 극대화 된다.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될 때 까지, 지루하다 싶은 구석이 있었음은 사실이다. 희망을 맛 본 두 사람이 꼭 만나야 했을까. 두 사람이 만났던 장면 보다, 여자 김씨가 방문을 열고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 보며 처음으로 대화를 시도했던 장면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각자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하는 희망도 함께 이야기 했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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