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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시간

윤대녕 - 천지간






  「천지간」은 1996년 4월네 『문학사상』에 발표되어 그 해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윤대녕’의 단편소설로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인연의 끈'이라는 운명의 논리로 확대해석한 여로형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외숙모의 부음을 받고 광주로 문상을 가는 길에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한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목적지와 무관한 완도행 버스를 타고 남도의 외진 바닷가 마을 구계등에 이른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들어간 여관 주인과 함께 한 여인을 죽음의 그림자에서 건져내기 위해 노력한다. 소리꾼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날, 여자는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전생’에서 벗어나 아이의 아버지와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렇듯 한 여인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종국에는 뱃속의 아이도 죽음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주며 주인공 ‘나’가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 또한 해소된다. 낚시를 하다 물에 빠진 ‘나’를 구하려다 죽은 친구에게 가지고 있었던 그의 죄책감이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서 본 죽음의 그림자를 못 본 척 할 수 없게 만들고, 그래서 결국은 두 생명을 구하며 죄책감을 떨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상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백색’과 ‘심청가’, ‘범피중류’. ‘동백꽃’. ‘바다’, ‘달’ 등 많은 상징들이 존재한다. 그 중 ‘상복’은 ‘나’ 자신이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하여 부담스러워하는 것이었지만 결국은 일상복과는 다른 그 의복이 가져다주는 묘한 비일상적인 느낌에 기대어 그가 여인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마치 공주를 구하기 위해 갑옷을 차려 입은 기사처럼 말이다.

  또 「천지간」은 전반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고 그 위에 여러 색채들로 치장한 한 편의 그림 같기도 하다. 붉은색은 ‘나’가 죽다 살아났을 때 자신의 손에 흐르던 피의 색이기도 하고 소리꾼들이 보려고 했던 눈 속에 피어난 동백꽃의 색이기도 하다. 붉은색은 새로 태어나는 생명, 죽음을 극복한 생명인 것이다.


  여관 주인은 '천지간 사람이 하나 들고나는 데 무슨 자취가 있을까'라고 말한다. 그렇다. 사람이 들고나는 자취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잃은 이의 가슴 속에는 자취가 남는다.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러므로 우리는 우연에 기대고 싶어지게 되고, 비일상적인 것들을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