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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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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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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2010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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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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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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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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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조용한 듯 힘있는 이야기에 반한 사람들의 눈에 들면서 외국과 국내에서 각본상, 영화대상 등 많은 상을 휩쓸며 마케팅이나 배우에 의존하는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난 '영화' 그 자체가 가지는 힘을 보여주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정신을 치유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나를 자연으로 내던져 자연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한 여자아이의 자살이 손주와 그 친구들로부터 시작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해자인 여자아이의 자취를 쫓고, 아름답지만 넌무나 고요하고 쓸쓸한 풍경 속을 거닐며 하나의 시를 쓰기 위한 한 여인의 과정. 이 영화 속 공간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그 흐르는 강물 속에서 떠오르던 시체 처럼 아름다운 것과 폭력적인 것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에는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음악이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이 전달되어온다. 바람에 풀이 나부끼는 소리, 냇물이 흐르는 소리, 새가 우는 소리 등 자연이 주는 소리와 일상의 소음을 좀 더 강조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엔딩씬에서 그녀의 시가 끝남과 동시에 물이 흐르는 소리와 소녀들이 떠들썩하게 멀어지는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의 진한 여운과 감동을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 들, 너무나 현실적인. 돈으로 한 사람의 목숨 값을 치르고 죄를 묻으려 하고, 한 소녀를 자살에 이르게 해 놓고도 아무 죄책감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손자,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도 약물의 힘까지 빌어 자신의 몸을 원하는 할아버지, 미자가 남기고 떠난 시.
이 영화에서 주인공 '미자'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습관화된 일상에 고착되어 더 이상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받아들이거나 감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보는 집 앞의 나무 한그루도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할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시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고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밀양에서 처럼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정말로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이창동의 '시'가 2010년 보았던 영화들 중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