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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잡담

경상북도 영주 선비촌 - 죽령옛길 - 부석사



  나는 밝은 청록색의 다소 화려한 버스 의자에 앉아 무지개 색 조명을 보며 깔깔거렸다. 버스 회사 이름이 Good인 것 마저 즐거울 정도로 들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영주로 가는 내내 전 날 친구와 먹었던 쟁반 짜장 2인분이 속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큰 사건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선비촌에 도착, 밖에서 본 김규진가는 작고 동글동글했다. 잘 구운 빵 색깔 같기도 한 것이 정겨웠다. 나는 이 작고 낮은 집에 대한 친근감이 들기 시작했다. 있는 듯 없는 듯 낮고 사이사이가 허술한 담장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김규진가의 치명적 단점은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관광객을 배려하여 보일러까지 잘 들여놓았으면서 배설욕구를 해소 할 장소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옆의 초가나 공동화장실까지 가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초가 앞의 죽계천 주변에는 봄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죽계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죽계루가 위치해 있었고, 저자거리에는 매점과 전통찻집, 토속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으며 시금치나물 위에 놓인 무당벌레를 볼 수 있었고 평소라면 꽤 호들갑을 떨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지친 우리는 그것에 시들한 반응을 보이며 접시를 조용히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다음날 시금치나물이 다시 상 위에 올랐을 때에 그것을 맛있게 먹고 나서야 어제의 일이 떠올랐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밤에는 죽령옛길이라는 곳을 걸어 내려 왔다. 사극에서 외진 길 촬영 할 때에 많이들 와서 촬영 한다기에 그저 외진 길 이겠거니 했는데 산 위에서 아래까지 걸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한밤중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험한 길도 아니었을 것 같은 산길을 내려오며 한손에 자가발전 렌턴을 계속해서 작동시켰다. 앞줄이었기에 한 줄로 내려오는 일행들을 뒤돌아보았는데, 마치 사이비종교의 비밀집회라도 하는 것처럼 노란후드를 뒤집어쓰고 한손에 렌턴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밤하늘의 별무리 같기도 했다. 가이드가 하늘에 별이 떴다고 크게 외치자 다들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땅과 하늘 모두 밝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둘째 날 우리의 목적지는 부석사였다.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그 무량수전이 있는 절이었다. 부석사에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따가운 햇살과 등에 흐르는 땀줄기로 인해 제대로 듣지 못한 가이드 언니의 설명을 서울로 돌아와서야 다시 찾아보게 되었지만...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종찰로 꼽힌다고 한다. 화엄종을 이어온 대부분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고, 궁예가 자신의 아버지인 경덕왕의 초상화를 칼로 찔렀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역사 속 절이기도 하단다.

  전설 이야기가 끝나고 신나게 약수로 손도 씻고 마시기도 하며 더위를 달랬다. 등줄기에 흐른 땀이 찝찝해서 옷을 펄럭대자 옷 안으로 부석사의 바람이 들쑥날쑥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쭉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에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기둥의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이런 표현이 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그 조화와 상쾌함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불교의 절이 가져다주는 신비로움은 교회나 성당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마치 역사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함께 고요해졌다. 나는 내려오며 사과를 사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했지만 누군가 ‘아, 사과 맛없어!’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안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고 나의 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버스의 퀴퀴함에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어 금방 부석사가 그리워졌다. 반혼수상태로 천안에 도착했고 정신을 차리자,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보였다. 문학기행의 피날레를 장식해주는 꽃가루였다.





대학교 첫 MT를 다녀와서 썼던 글. 추억이 되살아 나...기는 커녕 나의 아웃사이더 성향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