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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의 틈새 밖에 없었다."
토니 타카타니의 ‘토니’는 일본인의 이름이라기에 조금 묘하다. 이름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이유로 그는 늘 틀어박혀 있는 소년이었다. ‘토니’는 아버지인 쇼지부로가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위로해준 미군 소좌의 이름이었다.
그는 혼자서 자라난다. 특별히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 소년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 그는 예술성, 시사성 등 회화 어디에 그런 가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그런 것들은 단지 미숙하고 추하고 부정확한 것일 뿐이다. 결국 그는 자동차나 기계의 세부적인 면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
감정이 거세된 사람처럼 일에만 몰두하던 토니는 작업장에 찾아 온 에이코를 사랑하게 된다.에이코는 옷을 사는 행위에서 내면의 부족한 심리를 보상받기 원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토니와의 결혼 후에도 수입의 대부분을 쇼핑에 쓰게된다.
토니는 결혼 후에 자신이 고독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기묘함을 느낀다. 한 번 더 고독이 찾아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공포가 그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위해 커다란 옷장과 신발장을 마련하고, 결국은 방 하나를 의상실로 개조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내에게 넌지시 이렇게 많은 옷이 필요하냐고 말하며, 그녀가 충동을 억제해 주기를 바란다. 에이코가 옷을 더 이상 사지 않기로 토니와 약속하고 난 후, 그녀는 옷을 사지 않기 위해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옷을 사지 않게되자 자신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옷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욕구를 느낀 그녀는 결국 쇼핑을 하고, 환불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자꾸만 환불한 옷이 생각 나 차를 돌리는 찰나에 사고가 나 죽게 된다.
토니는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옷을 대신 입어줄 여성을 구한다. 그녀와 같은 사이즈를 가진 히사코는 이렇게 많은 옷을 입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아내의 옷방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히사코의 존재가 아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결국 토니는 아내의 옷방을 중고 상인에게 처분한다.
얼마 후 아버지가 죽고 아내의 옷방에는 옷 대신 레코드 더미가 쌓인다. 토니는 그것들도 얼마간 보관하다 처분한다. 결국 그는 빈 방에 누워 자신이 정말 외톨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가 감옥에 누운 모습은 아버지가 감옥에 누운 모습이고 고독은 감옥과 같은 것이 된다.
토니는 옷방에서 울던 여자를 잊을 수 없어 전화를 걸지만 그녀가 전화를 받자 끊어 버린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끊기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소리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화면전환은 마치 책장을 넘기는 것 같다. 나레이터가 나레이션을 쭉 하다가 마지막 문장은 배우가 하는 것이 특이했다. 나는 책을 보고 있고 내 상상 속의 배우가 머릿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내를 대신 할 수 없었던 옷도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었던 레코드 더미도 모두 처분한 방안에 누워 감옥과도 같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것, 영화 첫 부분에 "감옥에서는 삶과 죽음이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의 틈새 밖에 없었다."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고독한 자의 삶과 죽음도 머리카락 한 가닥의 틈새일 뿐이다.
옷을 보면 사고 싶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던 아내는 허영에 차 있는 여자라기보다는 마음이 비어있는 사람이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을 옷을 사는 것으로 채우지만 옷을 사고 또 사도 마음은 언제나 비어있다. 인간의 내부는 물질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고독한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우울해보이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것은 한 권의 작은 책처럼 조용한 울림으로 고독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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